“IMF때는 보너스도 반납하며 일했다. 그렇게 청춘을 바치며 일한 회사, 아이 졸업식에도 못가고 묵묵하고 우직하게 일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나가란다. 기가 막혔다. 청춘도 지나 어디 취직할 곳도 없는데, 아이 등록금도 더 내야 하는데 그냥 나가라 한다. 그게 싫어 반발하고 노조를 만들었더니 공장이 생기는 인도네시아로 가란다. 그냥 그만 두란 소리다.”

2000년대 중반 아웃도어 시장의 성장과 함께 매년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K2코리아는 지난 3월 8일 유일하게 국내에 남은 생산라인인 신발공장도 인도네시아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 93명에게 5월 31일 부로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K2는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 블랙야크, 네파, 아이더 등과 함께 대표적인 국내 등산장비 업체 가운데 하나이다. K2 코리아는 지난해 매출만 4천억원을 넘었고 주주들은 2010년부터 2년 간 총 145억의 배당을 받았다. 그럼에도 신발공장 여성 생산직 노동자들의 경우 몇 년을 일해도 100만원을 밑도는 월급을 받았다. 이에 K2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투쟁에 돌입했다. 근무시간에는 일하고 일이 끝나면 집회를 열고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 서울 성수동 K2 공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K2 노조원들
정상근 기자 dal@
K2코리아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에 정리해고를 통보한 사측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김용림씨는 “사무직은 밥도 시켜먹는데 우리는 식당에서 밥을 시켜도 공장에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며 “공장 안에 40도가 넘어도 고작 대형 선풍기 하나 사놓고 그걸로 4~5명이 쓰라고 했다. 사람들이 픽픽 쓰려져도 소용없었다”고 말했다. “사무직이 쓰는 사무실은 에어컨이 펑펑 돌아가고” 그가 덧붙였다.

최기숙씨도 “손가락이 장애인이 될 정도로 일 해왔는데 기본급이 85만6천원에 수당 붙여봐야 100만원대 수준”이라며 “관리자들이 자기들에게 잘 보이면 월급을 올려주고 바른 소리하면 월급 깎고, 그런 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설날, 추석에 쉬라고 해서 쉬면 그걸 연차에서 깐다”고 토로했다. 6~70년대 수준의 노동환경에도 이들은 10여년 가까이 회사를 위해 일해 왔다.

그런 노동자들에게 K2는 정리해고를 통보했고 이에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결국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주변의 관심이 높아지고 노조가 생기자 사측은 정리해고가 아닌 전환배치 안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회사의 전환배치도 사실상 정리해고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지영식 노조 지회장은 “정리해고를 안할 테니까 우리보고 인도네시아로, 개성으로 가라고 했다”며 “50대 아줌마들에게는 매장에 가서 옷을 팔라고 했다. 이게 그만두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라고 말했다. 최기숙씨도 “우리 기술이 신발 만드는 건데 옷을 만들라는 거다. 그 경력은 없으니 거기서는 또 최저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림씨는 “뿔뿔이 흩어지게 만드는 거다. 못 버티게”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 라인을 그냥 돌려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성씨도 “어쨌건 내 밥줄이니 묵묵히 일만 했다”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악법도 법이라는 생각으로 일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에는 매출이 4천억, 올해는 5천억 어쩌고 하는데 이중 우리 월급이라고 해봐야 5~6%밖에 안 될 것”이라며 “우리가 무식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김용림씨는 “인건비 절감한다고 인도네시아를 가면 옷이나 싸게 팔겠나?”며 “받을 건 다 받는다”고 비판했다.

K2는 지난 1월 이명박 정부로부터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으로 선발되었다. ‘일자리 창출’과 ‘고용시장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다. K2 코리아는 지난해 74명의 사무직 계약직 노동자를 채용했으나 이번 93명에 대한 사실상의 정리해고 통보로 무색해졌다. 이관희씨는 “74명을 채용해서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좋다. 그러면 93명을 잘랐으면 다른 조치 취해야 하지 않겠나?”고 지적했다.

  
▲ K2 노조원들이 이날 현장을 방문한 경희대-고려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필성씨, 이관희씨, 김용림씨, 최기숙씨
정상근 기자 dal@
K2는 현재 83명의 노조원으로 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사측이 5월 31일로 최후통첩을 한 만큼 더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치러지는 노동절(5월 1일)이 이들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김필성씨는 “그동안 우리는 노조가 없었는데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만들었다”며 “아줌마들은 TV에서 온통 화염병만 던지는 걸 보여주니 노조 설립을 반대해왔는데 막상 당하고 보니 그게 아닌거다”라고 말했다. 김용림씨는 “언론은 노조에 대해 매번 나쁜 쪽으로만 보여준다”며 “정확한건 안보여주고 온통 부수고 패는 장면만 보여주니 겁이 났는데 막상 (노조를)해보니 재밌더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