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친구가 뭘하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전교생 모두가 아는 사람들이었고 요즘 일진이라고 하는 녀석들의
정점에 서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랑 나랑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친구 였는데
어느 순간 조폭으로 들어갔다. 자기가 원했다기 보다 가정이나 학교가 그 친구를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 (중학생이 뭘 안다고)
아무튼, 그 친구의 이미지는 건들면 죽는다 였다. 지금 생각해도 학교 시스템을 구성하는
최고의 선생님이 그 친구를 계도 한다고 해도 계도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친구들을
따르는 어중간이 무리들이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사실 그 친구의 부모님이 되어 계도를 하지 않는 이상, 고등학교 진학하지 않는 것과
중학생이지만 막 사는 그런 모습에 대해서 뭔가를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중학생인 내가 봐도 그런데 어른들이 보기에는 어떨까?
내가 만약 그 때의 선생님이라면 충분히 어른들이 걷고 있는 길들을 설명해 주면서
지식을 주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중간한 친구들은 당연히 계도를 하겠지.
학교 시스템은 그래야 한다. 어중간한 친구들은 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조폭이 되어 목숨도 아깝지 않은 한 학생 때문에 학교 시스템이 무너지면 안되는 것이다.
회초리를 드는 모습이 폰카에 찍혀서 한번 올라갔다고 해서 전체 시스템을 비폭력 주의로
가장한 무관심으로 바꾸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무조건 보수적으로 가자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점은 바로바로 고쳐야 하겠지만 오래도록
사람들 생각에 박혀온 좋은 것들을 뉴스 기사 하나로 바꾸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사는 생활 방식은 한번 필이 꽂히면 바로바로 시행하는 스타일인데 인생을 살아보니
정형화된 시스템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더라. 그래서 기존것을 최대한 유지
하고 좋은 쪽으로 만드는 방법을 써야 한다. 그리고 먼저 말했듯이 특이한 인자는 예측 범위
안에 두어야 한다.
이 말인 즉,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바꾸지 못할 것은 없다. 그러나 시간이 문제이다. 시간은 한정적이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잘못을 회개 하고 바르게 살고 싶다고 해서 그 용서는 기각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 죽지 직전을 시간동안 고치지 않은 잘못 때문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입은 피해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포기할 부분은 확실히 포기해야 한다.
일진 문제도 그렇다. 나중에 조폭이 되어 조폭의 길을 걷는다고 하면 그 친구를 피곤하게
하면 안된다. 그러나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으면 잘못된 부분 중 경찰서에 보내야 하는 부분
은 경찰서에 보내야 한다. 그걸 위해서 존재하는 시스템은 잘 활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정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해 줄 수는 있겠지만. 선생님 입장에
적은 월급에 지금 제자와 앞으로 가르칠 모든 제자들에게 자신의 시간외에 금전적 부분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해결되지 못한 부분은 모두 공개되어야 한다. 그 공개된 자료들을 토대로 새로운
시스템은 자동 출현하게 되어 있다. 초기의 이러한 시스템을 여론이라고 한다.
여론은 금방 식는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시간과 돈이 남아 도는 친구들은 이런 부분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누구나가 그러한 여론을 시스템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자살 이야기가 많이 돌아왔는데 결론을 말하면, 내가 말했던 시스템인
1. 시스템에서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 특이 인자 격리
2. 시스템이 해결되지 못한 부분의 공개
3. 공개된 미 해결점에 대해서 형성된 여론을 수용할 시스템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인프라에 대한 인식.
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자살 문제는 발생하고 있다.
그러면 해결책은 ? 다음 포스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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